
열여덟 살, 저는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때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도 확신할 수 없고, 어른이 되고 싶으면서도 그 무게가 두려웠습니다. 영화 열여덟 청춘은 그 시절의 텁텁한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열여덟의 자아정체성 탐색, 영화가 포착한 것들
영화는 시골 여고에 부임한 국어 교사 희주와, 존재감 제로라 불리는 학생 순정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화가 사용하는 자아정체성(self-identity) 탐색 방식입니다. 자아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일관된 감각으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청소년기의 핵심 발달 과제로 제시한 개념입니다. 영화 속 순정은 이 과제를 정면으로 겪고 있습니다.
희주 선생님이 수업에서 진행하는 '카드 버리기 테스트' 장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가족, 친구, 멘토, 자기 자신을 카드에 적은 뒤 하나씩 버려가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가치 위계화(value hierarchy)란 한 개인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서열화하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순정은 마지막까지 엄마 카드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으면서도 엄마를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괜히 목이 메었습니다. 저도 그 나이에 저런 많은 생각과 풀 수 없는 미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열여덟에 진로를 두고 부모님과 적잖이 부딪혔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이 바라는 방향이 달랐고, 어느 날 엄마의 표정이 속상해 보이는 걸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반항이라기보다는 그냥 혼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감각이 정확히 자아정체성 확립 과정의 한 단면이었던 셈입니다.
발달심리학 영역에서 청소년기의 개인화(individuation) 과정, 즉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은 건강한 성장의 필수 단계로 봅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순정이 옥상에서 돌을 집어 드는 행동은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자기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던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직접 공감한 장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족 앞에서는 강한 척하면서 혼자 있을 때 무너지는 순정의 이중성
● 친구들과 유치한 약속을 맺고 그걸 목숨처럼 진지하게 여기던 분위기
● 누군가의 기대를 벗어나려는 발버둥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죄책감
지금은 다 웃으며 돌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게 진심으로 삶의 전부처럼 느껴졌습니다.

성장통을 다루는 방식, 영화의 한계와 여전한 울림
영화는 힐링 장르의 문법인 내러티브 카타르시스(narrative catharsis)를 충실히 따릅니다. 내러티브 카타르시스란 이야기 구조를 통해 관객이 감정적 정화와 해소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공식은 효과적이지만, 저는 솔직히 좀 아쉬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성장통이라는 단어를 영화는 꽤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열여덟의 방황은 그보다 훨씬 텁텁하고, 정리되지 않는 채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반항과 화해라는 이분법적 서사로는 담기 어려운 감정들, 예를 들면 죄책감과 분노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감정(ambivalence)이 있습니다. 복합 감정이란 같은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상반된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로, 청소년기 부모 관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순정이 엄마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 카드를 버리지 못하는 장면이 가장 정직하게 그 감정을 포착했다고 봅니다. 나머지 서사는 조금 매끄럽게 봉합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유효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쳐 있는 분들, 혹은 열여덟을 한참 지나온 분들에게 잠깐 멈춰 서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국내 청소년의 심리적 웰빙(psychological well-being) 수준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 현실에서 이런 영화 한 편이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저는 그때의 저에게 오늘의 행운 번호를 알려줄 수 있다면, 번호 대신 '결국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괜찮아지기까지의 그 치열한 방황을 굳이 지워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괜찮다고 하고 싶습니다.
열여덟 청춘은 단순한 위로 영화가 아니라, 잊고 있던 감각을 꺼내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친구와 함께 봐도 좋고, 부모님과 함께 보면 서로 그때 어땠는지 한번쯤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 그냥 한번쯤 열여덟의 자신에게 말을 건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