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사찰 벽화에서 지옥도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불길 속에서 뒤틀린 형상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그 정지된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혀서 한동안 밤마다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수년 뒤 극장에서 영화 콘스탄틴을 보는 순간, 저는 그 기억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목격했습니다. 지금 콘스탄틴 2 제작 소식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때의 전율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입니다.
정지된 지옥도가 살아 움직이던 순간
사실 콘스탄틴을 처음 볼 때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담배를 달고 사는 퇴마사를 연기한다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 지옥 시퀀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화면에 펼쳐진 지옥은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느껴질 것 같은 질감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사찰 벽화에서 봤던 그 지옥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단지 닮은 게 아니라, 정지된 그림 속 군상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영화가 특정 기억과 맞닿는 순간 공포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영화는 오컬트(Occult) 장르의 세계관을 촘촘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오컬트란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을 다루는 장르로, 단순한 귀신 공포물과 달리 천사, 악마, 인간이 하나의 코스몰로지(Cosmology), 즉 세계관 체계 안에서 균형을 이루며 대립한다는 구조를 전제합니다. 콘스탄틴은 바로 이 균형이 깨지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 존 콘스탄틴이 악령을 쫓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싸우는 게 아니라, 악마들에게 통성명을 요구하고 그들의 위계와 규칙을 역이용합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액션 히어로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었고,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진지하게 신학적 상상력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과소평가된 명작, 콘스탄틴의 세계관
콘스탄틴은 2005년 개봉 당시 흥행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영화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DC 코믹스의 버티고(Vertigo) 레이블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히어로 무비가 아니라 성인 취향의 다크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버티고 레이블이란 DC 코믹스의 성인 독자용 임프린트로, 보다 어둡고 철학적인 서사를 지향하는 라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끝나는 작품이 아닙니다. 처음 볼 때는 시각적 충격에 압도되고, 두 번째 볼 때는 캐릭터들의 관계와 신학적 설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은 고난 중에만 선해진다는 왜곡된 믿음으로 사탄의 아들 마몬을 이용하려 한다는 역설적인 구조입니다. 이 설정은 지금 다시 봐도 꽤 묵직합니다.
영화가 다루는 영매(Medium) 개념도 흥미롭습니다. 영매란 이승과 저승, 혹은 인간계와 영적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의미합니다. 안젤라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 이사벨이 바로 이 역할을 맡게 되며, 이 설정이 마몬의 이승 진입 시도와 맞물려 핵심 플롯을 구성합니다.
이 영화가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05년 당시 DC 히어로물에 대한 관객 기대치가 밝고 통쾌한 방향이었던 것
● 키아누 리브스 특유의 건조한 연기가 주인공의 고독함과는 잘 맞지만, 대중적 호소력이 약했던 것
● 오컬트 장르 특유의 세계관 밀도가 캐주얼한 관람층에게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 것
그럼에도 영화는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대 들어 유튜브 클립과 리뷰 조회수가 급등하며 컬트 클래식(Cult Classic)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습니다. 컬트 클래식이란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열렬한 팬층을 확보한 작품을 가리킵니다([출처: British Film Institute](https://www.bfi.org.uk)).
콘스탄틴 2, 드디어 올 것인가
속편에 대한 소식은 몇 년째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신빙성이 다릅니다. 원작에서 루시퍼 역을 맡았던 배우 피터 스톰에어가 직접 SNS에 콘스탄틴 속편 제작 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연출을 맡았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역시 이전부터 속편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온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존 윅 시리즈로 다시 전성기를 맞은 키아누 리브스가 콘스탄틴으로까지 돌아온다는 건 팬 입장에서는 과분한 선물입니다. 제 경험상 원작 배우와 감독이 함께 돌아오는 속편은 세계관의 연속성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편에서 기대되는 요소를 살펴보면, 우선 R등급 제작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R등급이란 미국 영화등급위원회(MPAA)가 부여하는 17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폭력성이나 성인 주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등급입니다. 이는 원작 코믹스의 어두운 분위기를 더 충실히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출처: MPAA](https://www.motionpictures.org)).
또한 카타나 단독 영화 제작이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원작 코믹스에서 존 콘스탄틴과 접점이 있는 타나가 속편에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두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만난다면 DC 유니버스의 어두운 축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올 콘스탄틴 2가 어떤 모습일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남긴 지옥의 질감, 담배 연기 속 퇴마사의 고독, 구원의 서늘한 역설이 다시 스크린에 펼쳐진다면 저는 기꺼이 첫 회 티켓을 끊을 것입니다. 공식 발표를 기다리는 지금, 그때 사찰 벽화 앞에서 느꼈던 소름이 다시 한번 등골을 타고 내려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PYRwKKSq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