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 영화는 대개 공포와 위협이 기본값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극장을 나오는 길에 눈가가 촉촉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원인이 외계 생명체였다는 게 아직도 좀 믿기지 않습니다.
고립된 우주선, 그리고 기억을 잃은 남자
일반적으로 우주 SF 영화는 기술과 스펙터클로 승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영화는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우주선 안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동료 승무원 두 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조차 기억이 없습니다. 이 설정 자체가 영화 전체의 감정 구조를 결정합니다.
영화는 플래시백(flashback), 즉 과거 장면을 교차 편집하는 서사 기법을 통해 그레이스가 어떻게 이 자살 미션에 오르게 됐는지를 천천히 복원합니다. 여기서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캐릭터의 배경과 동기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 편집 방식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그레이스는 자신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라이언 고슬링 특유의 건조하고 약간 비틀린 유머로 치환합니다. "나 똑똑한 사람이었어"라는 한 줄이 그 모든 걸 압축합니다.
배경이 되는 위기도 묵직합니다. 태양이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미지의 우주 미생물에 의해 에너지를 잃어가고, 30년 뒤 지구는 빙하기와 식량 대란으로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미션의 이름이 헤일메리(Hail Mary)입니다. 헤일메리란 원래 가톨릭 기도문에서 온 표현으로, 승산이 거의 없는 절박한 마지막 시도를 뜻합니다. 미션 자체가 이미 이름에서부터 체념과 결의를 동시에 담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유독 마음이 걸렸던 건 따로 있습니다. 그레이스가 고립된 우주선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저에게는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의 큰 수술과 끝이 보이지 않는 투병을 겪으면서 저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병실에서,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흐릿해지는 그 느낌 말입니다.

버디 무비의 핵심, 돌멩이가 울린 이유
일반적으로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하면 공포나 갈등이 기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보니 이 영화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본질은 버디 무비(buddy movie)입니다. 버디 무비란 성격이나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캐릭터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유대를 쌓아가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여기서 버디는 인간이 아니라 거미 형태의 외계 생명체 로키입니다.
로키의 구현 방식이 눈에 띄는데, CGI(컴퓨터 생성 이미지)가 아닌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애니매트로닉스란 실제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 기반의 특수 효과 기법으로, 디지털 합성보다 물리적 실재감이 강합니다. 얼굴도, 눈도 없는 돌덩이 같은 존재가 감정을 전달하려면 이 실재감이 결정적입니다. 저는 솔직히 그 돌멩이를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이게 민망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이 감정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설계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각본을 맡은 드류 고다드는 마션의 각본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스파이더버스 시리즈를 연출한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가 감독으로 합류했습니다. 이 조합이 택한 전략은 원작 소설의 70%를 차지하는 과학적 추론을 과감히 줄이고,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이어도 될 이야기를 실사로 구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실사라는 형식이 허구성을 낮추고, 관객을 훨씬 강한 밀도로 설득합니다.
로키가 그레이스의 외로움을 치유한다는 설정이 처음엔 왠지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경험한 투병 시절, 저를 지탱해 준 것이 가족이라는 강력한 중력이었는데, 그레이스에게는 그 자리를 돌멩이가 채운다는 사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연결이 어디서 오든, 고립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소통하는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엔 음파 신호로 수학적 패턴을 교환하며 지적 존재임을 확인
- 점차 과학 개념을 공유하며 공통 언어를 구축
- 생존과 미션 해결을 함께 도모하며 신뢰 관계 형성
- 결국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 선택의 무게가 극에 달함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
아이맥스(IMAX)로 보는 게 과연 체감 차이가 날까 의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체 러닝타임 2시간 40분 중 약 110분에서 120분 분량이 아이맥스 화면비로 촬영됐습니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들보다도 높은 아이맥스 비율입니다.
아이맥스 포맷이란 일반 영화관보다 훨씬 큰 화면 비율과 해상도를 제공하는 대형 상영 시스템을 의미하며, 특히 우주 공간처럼 광활한 스케일을 담을 때 몰입감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우주 유영 장면과 행성 채집 시퀀스에서 그 차이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화면이 그냥 넓은 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달라지는 감각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시각 언어가 우주를 공포의 공간이 아닌 경이(wonder)의 공간으로 설계한다는 점입니다. 경이란 단순히 아름답다는 감각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 범위를 초과하는 대상 앞에서 느끼는 압도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포함합니다. 헤일메리호 내부의 조명 설계는 차갑고 폐쇄적인 우주선 공간의 통념을 의도적으로 깨는 방향으로 구성됐고, 빛의 색감과 그림자 방향이 씬마다 다른 감정적 밀도를 만들어냅니다.
영화 제작 측면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라이언 고슬링은 스스로 출연 의사를 밝히고 기다렸습니다. 2021년 아마존이 MGM을 인수하면서 제작이 재개됐고, 각본은 드류 피어스가 3년간 다듬은 뒤 드류 고다드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복잡한 개발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완성도가 나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지구로 돌아갈 기회를 포기하고 친구를 선택한 그레이스의 결정,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답을 못 했습니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레이스가 느끼는 갈등이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얼마나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지는 아직 지켜봐야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머문 작품입니다. SF 영화가 단순히 스케일을 소비하는 장르를 넘어 인간의 연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다시 증명했습니다. 영화 경험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을 설계하는지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이맥스 상영이 가능한 시간에 극장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돌멩이를 직접 보시면, 저의 이 글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